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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해롭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얼마나 어떻게 유독한지 신체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유년기에 있었던 일이다. 아파트 상가를 걷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남자가 내 머리를 툭 쳤다. 깜짝 놀라 뒤돌아봤지만,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상가 밖 출구로 걸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일 같지만, 유년기에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몇 가지 일을 겪은 뒤에 특정 나이대, 특정 성별을 무서워하게 됐다. 이런 일은 유년기에 어쩌다 한 번 짧은 시간 동안 간격을 두고 일어난 일이다. 성인이 된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18세 이전에 겪었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40대 이후 암, 뇌졸중과 같은 병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면 어떨까? 트라우마와 우울증은 가까워 보이지만, 트라우마와 신체 장기에 발병하는 병은 인과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부정적 아동기 경험에 대한 연구 ‘ACE 검사’를 기반으로 치료하는 ‘아이들을 위한 웰니스 센터’의 설립자 네이딘 버크 해리스는 유독성 스트레스와 삶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뷰 헌터스 포인트에서 오랜 기간 진료해온 잔뼈 굵은 의사이기도 하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저자가 베이뷰에서 진료해 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부정적 아동기 경험이 장기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에세이식으로 서술한 의학서이다. 의학서지만, 저자의 진료 사례가 충실하게 등장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의학 지식도 쉽게 이해된다.

저자는 18세 이전 유독성 스트레스(빈곤, 부모의 이혼, 폭력 등등)에 노출된 아이들은 이후 성인기 발달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학계에선 ‘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라 부른다. 학술서지만 심리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사례 중심적이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경험을 십분 활용해 어떻게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말한다. 저자가 진료했던 한 아이, 디에고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공중보건 의학의 역사를 되짚고 왜 지금 시대에 ‘ACE 검사’가 필요한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